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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붉은 여왕> <게놈>의 매트 리들리(Matt Ridley)스크랩 2015. 3. 1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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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과학 저술가의 삶과 책 ⑤
<붉은 여왕> <게놈>의 매트 리들리(Matt Ridley)
매트 리들리는 동물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과학자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학탐구를 하는 과학자라기보다는 과학저술가, 더 정확하게는 과학저널리스트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지금까지 이 칼럼을 통해 소개한 칼 세이건과 리처드 도킨스는 과학자와 과학저술가란 호칭이 모두 어울리는 인물이었고 스티븐 호킹에겐 세계적인 천재 과학자란 칭호가 안성맞춤인 것과는 대조가 된다.
과학 저술을 꿈꾸는 이들의 교범이자 모범
저널리스트는 제너럴리스트란 말이 있듯이 그는 과학저널리스트이면서 관심의 영역이 순수과학 분야에만 머물지 않았다. 진화심리, 생명과학 등 전공, 또는 전공과 가까운 분야는 물론이고 인류학, 사회학 등 인문사회 전 분야를 두루 섭렵하며 진화와 유전학, 사회를 주제로 도발적인 책들을 써온 세계적인 과학저술가이다.
그의 책들은 출판 즉시 27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생생한 지성과 명석함, 균형감과 재치 넘치는 글쓰기, 수려한 글 솜씨와 비유 등은 과학 저술을 꿈꾸는 이들의 교범이자 모범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책들은 성의 생태와 진화, 과학의 미래를 공부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과학에 관심이 많은 인문・사회과학도들도 한두 권은 꼭 읽어야 할 입문서가 되고 있다.
그는 1958년 영국의 뉴캐슬에서 태어났으니 필자와 연배가 엇비슷하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동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부터 8년 동안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과학전문 기자로서 워싱턴 특파원 겸 과학기술 분야 편집자로 일했다.
1993년부터는 런던의 <데일리 텔레그래프>와 <선데이 텔레그래프>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왔다. 이 또한 필자도 1983년부터 일간지에서 과학전문기자로 발을 디뎌 과학・환경・의학 분야 기자를 두루 거쳤고 데스크도 지냈으며 지금은 칼럼 등을 쓰고 있으니 흡사한 점이 많다. 다만 그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단지 많이 팔린 책이 아니라 주옥같은 책을 낸 반면 필자는 변변치 못한 과학・의학・보건・환경 책을 몇 권 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 할 수 있다.성의 진화를 주제로 한 <붉은 여왕>(1994년)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리들리는 <게놈>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그밖에 <본성과 양육>(원제는 Nature via Nurture) <질병의 미래> <이성적 낙관주의자> <이타적 유전자> 등도 그의 진면목이 유감없이 잘 드러난 책들이다. 그는 현재 영국 뉴캐슬에 거주하면서 국제생명센터의 의장직을 맡고 있으며 미국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 역작 <붉은 여왕> 세계 주목 받아
먼저 리들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붉은 여왕>을 살펴보자. 성(性)과 진화 이론은 많은 과학자들이 화두로 삼았거나 삼고 있으며 앞으로도 삼을 주제이다. 세계적인 과학저술가들도 이 주제를 붙들고 씨름했다. 이 주제만큼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리들리도 <붉은 여왕>을 손에 쥐고 그 논쟁의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출간 후 10여 년간 진화심리학 논쟁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된다. ‘붉은 여왕’은 생물학에서 ‘모든 진보는 상대적’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동화작가 루이스 캐럴이 쓴 <거울 나라의 앨리스>란 작품이 있다.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그래서 우리들의 귀에도 낯익다. 이 동화에서 주인공 앨리스가 만난 ‘붉은 여왕’은 체스판의 말이다. ‘붉은 여왕’은 자기가
뛰면 주변 경치도 함께 뛰어 멀리 가지도 못하면서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 시지프스처럼 가엾은 처지다.리들리는 자신의 책에 ‘붉은 여왕’(원제 Red Queen)이란 제목을 붙여 생명체가 더 빨리 변할수록, 세상도 빨리 변하므로 진보가 점점 더 느려진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경쟁자들의 위협에 맞서 계속 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진화를 위해 붉은 여왕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성(性)이 최고의 전략이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인간의 진화는 생존보다 ‘번식’을 위해 이루어지며, 성공적인 번식을 위해서 남성과 여성은 독특한 능력을 발전시켜왔다. 리들리는 여기서 한 걸음, 아니 몇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지성 자체가 성 선택의 산물이라는 놀라운 주장을 펼친다. 결국 인간의 큰 두뇌는 이성을 유혹하고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성 분화는 인간 등 동식물의 기생생물 때문(?)
그는 또 인간의 성은 왜,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천착한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놀랍게도 기생생물과 유전적 진화 메커니즘을 꼽는다.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들에게는 미생물 등 기생하는 생물들이 가득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숙주의 유전자에까지 침투해 유전자를 조작하며 숙주의 삶과 죽음을 좌우한다. 이와 함께 때론 숙주의 수명조차도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조절한다.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기생생물은 미토콘드리아다. 물론 현재는 이것이 인간 세포 내의 소기관으로 전락했지만. 미토콘드리아는 아주 먼 옛날 박테리아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테리아가 인간의 세포 속에 침투하여 자신의 유전자를 인간의 유전자와 교묘하게 조합함으로써 지금의 미토콘드리아가 되어 인간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미토콘드리아는 모계(여성)를 통해 후세에 자신의 유전적 특징을 전달하며, 인간 성 분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리들리는 성 분화의 또 다른 원인으로 유전적 진화 메커니즘을 이야기하고 있다. 후세에 전해지는 유전자 정보를 한가득 안고 있는 인간의 정자가 난자의 핵 속으로 들어갈 때 유전 정보가 있는 정자의 핵만이 난자 속으로 들어가 수정되며 정자의 나머지 부분은 제거된다는 사실은 다른 동식물에서도 관찰되는 현상이다. 이것은 난자에 의한 즉 암컷성에 의한 수컷성의 제거 현상이다. 그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의 자웅성은 ‘붉은 여왕’ 이론으로 설명한다.
<인디펜던트> <월스트리트 저널> 등 세계 저명 언론들은 이 책에 대해 뜨거운 찬사를 보냈다.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교수(현 국립생태원장)은 “우리 삶에서 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우리 삶 전체를 밝게 해줄 것이다. 성의 생태와 진화를 공부하려는 사람에게 이 책보다 더 훌륭한 입문서는 찾기 힘들다”며 찬사의 행렬에 동참했다.
‘본성?’ ‘양육?’ 둘의 손 모두 들어준 <본성과 양육>
리들리를 말하면서 <본성과 양육>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본성과 양육이라는 주제, 즉 본성이 우선이냐, 양육이 우선이냐 역시 성(性)과 성 분화 못지않게 끊임없는 논쟁을 한 세기 동안 일으킨 주제이다.
그는 이 책에서 1903년에 찍은 가상의 사진 한 장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사진 속에는 본성의 권위자들인 찰스 다윈, 프랜시스 골턴, 윌리엄 제임스, 위고 드브리스, 콘라트 로렌츠가 있고 또 한편에는 양육의 권위자
들인 이반 파블로프, 존 브로더스 왓슨, 에밀 크레펠린, 지그문트 프로이트, 에밀 뒤르켐, 프란츠 보아스, 장 피아제가 있다. 리들리는 이들을 앞세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나는 인간의 행동이 본성과 양육 모두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어느 한 특성에만 ‘필’이 꽂혀 그 특성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본성과 양육의 문제도 그래서 극단적인 대립을 해왔다. 리들리는 적어도 인간은 본성과 양육의 어느 하나만 가지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최신 유전학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이야기할 때 가장 정확한 인간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양육의 중개인이다.… 본성은 단지 양육을 통해서만 효과를 발휘한다.”
“유전자는 양육의 자기표현 수단이고, 양육은 유전자의 자기표현 수단이다.”“유전자는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 의해 지배된다.…기억은, 그것이 유전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기억이 유전자를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유전자’에 있다. 본성이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 것만큼이나 양육도 유전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와 같은 짧고도 명쾌하며 주옥같은 그의 말에서 우리는 본성과 양육이 샴쌍둥이처럼 둘 같은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붉은 여왕> <게놈>의 매트 리들리(Matt Ridley) (2)
세계가 주목한 또 하나의 걸작 <게놈> 탄생
매트 리들리는 <붉은 여왕>에 이은 또 하나의 걸작을 1999년 <게놈>(원제 Genome)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았다. 우스갯소리를 해보자면 게놈은 손가락을 아프게 무는 게(crab)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의 집합체를 말한다. 아직 게놈이란 단어가 생소한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한때 디엔에이(DNA)란 말이 낯설었다가 이제는 현대인의 상식이 된 것처럼 이제 게놈도 점차 우리가 일상생
활에서도 반드시 써야 할 단어로 변신을 꾀하는 중이다.게놈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인간의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순서대로 밝혀내기 위한 인간게놈프로젝트 도전과 성공이 이루어진 2000년대 초반을 전후한 때이다.
인간 게놈의 초기 지도는 2000년 6월에 발표되었다. 일부 신문에서는 게놈이 아닌 지놈이 맞는 표현이라고 하지만 게놈이 대세다.
지구에 생명, 즉 유전자가 등장한 것은 대략 40억 년 전. 게놈도 사실상 그 얼마 후 태어났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초기의 생명 모습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 나중에 탄생한 생명체들은 자신의 모습을 화석이란 이름으로 남겼다. 하지만 자신의 게놈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지 못했다. 진화를 거듭하며 살아남은 생명체에서 우리는 초기 게놈의 흔적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경우 23쌍의 염색체 안에 게놈이 있다.
<게놈>은 ‘게놈’이란 용어가 다소 낯선 사람일지라도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저자가 최대한 쉽게 쓴 책이다. 리들리는 23개의 인간 염색체-우리는 고등학교 때 ‘2n=46’이란 말로 배웠다-각각에서 새로 발견된 유전자를 하나씩 골라 현실적인 소재와 아주 일상적인 용어를 이용하여 그것이 지닌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게놈’의 기초적인 정보들이 밝혀지면서 세상은 생명과학의 정보를 상당히 광범위하게 공유하면서 그 신비를 파헤치고, 그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과학자는 아니지만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공유자이며, 오히려 과학자들이 놓치기 쉬운 사회적・ 도덕적 문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생명공학이 우리에게 주는 현재와 새로운 미래를 새삼 깨닫게 하고 있다.
23쌍 염색체 끌어다 23개 인간 본성 주제맛 깔나게 풀어내
동식물은 고유의 염색체 쌍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23쌍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리들리는 이 인간 생명의 설계도 한 장마다 하나의 주제를 대비시켜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낸다. 그의 글은 참 맛깔스럽다.
23개의 장에서 세균도 가지고 있는 유전자, 인간을 침팬지와 구별해 주는 유전자,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 지능에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 문법체제를 갖춘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유전자, 몸과 두뇌를 만드는 유전자, 기억을 만드는 유전자, 선천성과 후천성이 교묘하게 작용하는 유전자, 수명에 관계되는 유전자, 서로 경쟁하고 있는 유전자, 인간의 이동사를 보여주는 유전자 등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관련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에드워드 윌슨 등 많은 과학자와 과학저술가들이 천착한, 매달린 탐구 소재이다.
리들리는 이 책에서 새로운 유전학적 지식이 초래할 엄청난 사회적・정치적 결과들도 보여준다. 유전 정보의 이용을 과학자나 의사, 정부의 손에만 맡겨둬서는 안 되고 반드시 개인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절로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인간 유전자를 구성하는 염기의 서열이 밝혀지고 유전자의 위치가 드러남에 따라 혹자는 인류의 질병 정복과 건강 장수, 풍요로운 삶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생명 경시, 인간 차별과 같은 인권 문제, 생태계 파괴 등 심각한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도 무시하기 어렵다.
세계적 영향력을 지닌 미국의 유력일간지 <뉴욕타임스>에서는 해마다 ‘뉴욕타임스 북 리뷰’에 실린 책들을 대상으로 그 해의 ‘최고의 책’을 선정한다. 리들리의 <게놈>은 논픽션 부문 1위의 영예를 안았다
유전자 해독은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어떤 과학적 노력보다 훨씬 더 많이 인류의 기원과 진화, 본성과 지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뿐만 아니라 앞으로 인류학, 심리학, 의학, 고고학 등 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바이오테크 시대, 즉 생명공학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당연히 이러한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게놈>은 염색체 23쌍에 있는 재미있는 유전자들을 중심으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서 발견된 내용들을 대중적으로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한 최초의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의식이란 무엇인지, 병에 걸린다는 것이 무엇인지와 같은 우리의 본질적 문제를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게끔 만든다.
<이타적 유전자> <이성적 낙관주의자>도 관심 끌기에 충분해
<게놈> 이후 1년 만에 펴낸 그의 <이타적 유전자>는 원제 ‘the origin of virtue’를 직역하지 않고 한국의 번역출판사가 리처드 도킨스의 세계적 명저인 <이기적 유전자>에 대비되는 의역 제목을 붙인 것이다.
앞서 지난 1월과 2월 이 칼럼을 통해서 이미 소개한 바 있는 <이기적 유전자>(1976년)는 “자연은 이기적 유전자를 지닌 생명체들의 거대한 생존 투쟁의 장이고, 모든 생명체는 자연 선택에 의한 적자생존을 위해 투쟁을 감행한다. 그리고 그 투쟁의 과정에서는 개체 차원의 이기성과 더불어 집단 차원의 이기성도 함께 발현된다.”는 주장으로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걸출한 저작이었다.
하지만 도킨스의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의 도덕과 협동(사회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리들리는 이 책에서 인간이 어떻게 이타성, 상호부조, 협동 같은 덕목을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해 사회생물학, 진화론, 게임 이론, 윤리철학 등 다양한 이론과 논리, 그리고 시각에서 조명한다.
그는 인간의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도킨스의 주장에 한편으로는 수긍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타적이라고 여긴다. 인간의 도덕과 사회성은 바로 이 ‘이타적 유전자’의 명령에 의해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지닌 덕(德, virtue)의 기원이라고 리들리는 강조한다. 그는 이기적인 인간이 어떻게 협동을 하고 집단을 형성하며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이타적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자 게임 이론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론을 빌려 설명한다.
2010년 최신작으로 펴낸 그의 또 다른 책 <이성적 낙관주의자>는 인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자신의 견해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세계적인 학자들이 많다. 이 가운데는 과학자들도 있다. 이들은 빈곤의 증가, 사막 확대, 악성 전염병 유행, 물 고갈로 인한 전쟁, 석유 등 화석연료 고갈,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정자 수 감소가 가져다줄 인류 절멸, 지구 온난화, 소행성 충돌 등을 거론하며 잿빛 미래에 경고장을 날렸다.
언론과 대중매체들도 이에 동조했다. 노엄 촘스키, 앨 고어, 마이클 무어, 제러드 다이아몬드, 레이철 카슨 등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하지만 리들리의 생각은 이들과 확실히 다르다.
칼 세이건, 스티븐 호킹 등처럼 과학의 발전은 오히려 인류를 희망으로 이끌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인류역사를 꿰뚫는 놀라운 통찰과 예측을 보여준다.
자연의 종말, 즉 지구의 종말은 오지 않을 것이며 과학적 이성은 낙관주의의 시대를 이끌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기후변화, 자원고갈, 경제 붕괴의 위협 등은 결코 우리를 파멸로 이끌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과학적 이성주의의 눈으로 명명백백하게 밝힌 희망의 증거를 다양하게 제시한다.
리들리는 프랜시스 크릭의 전기도 펴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크릭은 제임스 D. 왓슨과 더불어 1953년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20세기 최고의 과학자이다.
유명세는 왓슨보다 못했지만 결코 그보다 낮게 평가되어서는 안 되는, 다른 과학자들에게는 오히려 더 흥미로웠던 인물을 조명한 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다.
이밖에 <질병의 미래> <있는 그대로> 등의 저서도 펴냈다. <있는 그대로>는 미국 대통령제 정치를 파헤친 책인데 과학저술가가 이런 주제까지 도전한다는 것은 뜻밖의 일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매우 넓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글_안종주 과학칼럼니스트
글쓴이는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를 졸업 후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신문 과학기자, 한겨레 보건복지전문기자를 지냈으며. 현재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건강사회’를 연재하고 있으며 <내일신문> 에 ‘세상읽기’와 과학・환경 분야 서평을 정기적으로 쓰고 있다.
생명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관심사 중의 하나일 것이다. 신화에서는 그 탄생의 신비에 관심을 보였고 종교는 그 것을 신성시하였으며 철학과 과학은 그 본질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데 진력하였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생명에 대해서 무엇을 알게 되었으며 또 얼마나 더 알고 싶은 것인가. 그것에 대해서 좀 더 알아냈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혹시 생명을 무한히 연장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위한 연장인가. 혹시 단순한 호기심의 충족을 위한 것인가.
과학자만이 생명 일부 연장해
그동안 인류는 생명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의미를 부여하고 다양한 해석을 시도했으나 뚜렷하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둔 것이 별로 없다. 종교가들은 생명의 신비를 찬양하고 그 존엄성을 부각시키며 소중하고 겸허한 자세로 살아갈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철학자들은 삶의 의미를 극대화하고 그 한계를 의식함으로써 오히려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에 의해서 우리가 생명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
거나 죽음이 실제로 극복된 것은 아니다.
오직 과학자들에 의해서 생명이 어느 정도 연장되고 그 신비의 베일이 부분적으로나마 벗겨졌을 뿐이다.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생물은 기나긴 진화의 과정에서 태양빛을 활동의 에너지로 변환시키거나 주위의 물질을 끌어 들여 동화되는 등 소리와 빛과 접촉 등의 자극을 포착하여 적당하게 반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환경에 적응해왔다. 생물의 기본적인 기능이란 이러한 에너지와 물질, 정보 등을 변환하고 처리하는 것이고 그 메커니즘의 해명은 생명과학인 생화학과 분자생물학에서 주로 관여해 왔다.
인간게놈프로젝트 완성은 유전자 조작과 해독
오늘날 일반적으로 생물학자들은 생물 혹은 생명현상을 규정할 때 주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는 ‘물질의 대사’ 이다. 어떤 객체가 외부에서 물질을 받아 들이고 그것을 다른 물질로 바꿀 수 있는 작용을 말한다. 가령 기본적인 아미노산을 먹고 단백질을 만들거나 복잡한 음식물을 소화해서 간단한 화학물질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둘째는 ‘환경의 대처’이다. 외부 환경이 바뀌었을 때 어떠한 형태로든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그 변화에 반응하는 기능이다. 이것은 고등 동물은 물론 극히 하등 생물인 박테리아나 세균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특징이다.
끝으로 ‘자체의 증식’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 같은 자손을 계속 재생산하는 능력을 의미한다.생명현상은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추었을 때 유전자가 사령탑으로서 총괄적인 지휘의 역할을 맡게 된다. 인간의 경우 정자와 난자라는 세포가 서로 만남으로써 생명이 이루어지는데, 여기에는 염색체라는 물질이 들어있는 핵들의 융합을 통해 마침내 세포의 분열을 이루어낸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결국 60조의 세포가 만들어지고 몸의 조직과 장기들이 생겨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생산되는 것이 생식 세포 하나라는 점, 다시 말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염색체 혹은 유전자라는 화학물질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l954년에 이 유전자의 구조가 이중 나선으로 되어있다는 비밀이 밝혀졌다. 이 구조의 규명에 참여했던 왓슨(James Watson)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예전에는 우리의 운명이 별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것이 유전자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전자는 그 구조 명칭이 DNA이며 단순히 고분자 화학물질일 뿐 아니라 모든 생명현상을 지휘하는 정보이
기도 하다. 그것은 네 가지 문자로 구성되어 있고, 60조의 세포에 각기 30억 개의 정보가 있는데, 대략 A4용지
로 150만 장의 분량에 해당한다. 이 DNA와 문자 구조들이 알려진 후에 사람이 지닌 유전 정보의 문자를 해
독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드디어 ‘인간게놈프로젝트(Human Genom Project)’가 완성 단계에 이른 것이다.생명공학이란 생명과학이 밝혀낸 생물의 기능에 착안하여 개발된 유전자조작이나 세포융합, 수정란 이식, 조직이나 세포이식 등의 기술을 써서 식료품이나 의료품의 유용한 물질을 이용하여 품종을 개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건강과 장수, 혹은 인간의 행복과 연관되어 있다. 이른바 DNA 조작 실험을 시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시험관 안에서 유전자의 본체인 DNA를 효소등을 써서 잘라 붙여 만든 복합 DNA를 적당한 숙주세포에 도입해 증식시키는 방법인데, 이 기술로 유전자 구조를 해석하거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교환하는 것이 유전자 조작이고 그것을 모두 해독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인간게놈프로젝트인 것이다.생명의 신비는 문제 소멸로 해소 가능
매트 리들리(Matt Ridley)가 ‘게놈(Genom : The Autobiography of a Species in 23 Chapers)’에서 지적하듯이 ‘게놈’은 인간의 유전자에 대한 자서전이며 각 세포에 담긴 유전 정보의 총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 자신의 유전 정보를 완전히 아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인류의 기원과 진
화,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사회 전반에 대한 태도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념체계와 행동 양식에도 큰 변화가 올 것이다.이러한 변화에는 바람직한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을 것이며, 그렇지 못한 것 중에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감당할 수 없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령 게놈에 대한 정보가 방출되면 그 사용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개인 유전 정보의 보호도 필요할 것인데, 그러한 것이 과연 항상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러한 점을 우려하여 리들리는 유전 정보의 이용을 과학자나 의사, 정부의 손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개인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른바 ‘개인’은 그것한 것을 스스로 감당할 만한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제 우리는 생명의 신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을 얻게 되었다. 인류는 마치 성(性))의 신비에 대해서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아낸 사춘기의 청소년과 같은 입장이 되었다. 호기심의 충족을 위해 혹은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서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았지만 오히려 그러한 것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곤경에 처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가령 우리는 생명의 비밀을 알면 영생할 방법도 터득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지만, 왜 우리에게 영생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다. 그것은 항상 막연한 사춘기적 소망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은 ‘논리철학 논고(Tractatus-Logoc Philosophicus)’에서 인간의 영생은 어떤 방식으로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도대체 내가 영생한다고 해도 삶의 수수께끼가 풀리겠는지”를 묻는다. 영생한다고 해도 그것은 현재의 삶과 같은 것이며 여기서 생긴 문제는 시공을 넘어서기 때문에 ‘자연과학’의 문제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만약 이 것이 사실이라면 게놈프로젝트에 의해서 생명의 신비가 어느 정도 해명되더라도 삶의 수수께끼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문제는 답변을 마련하는데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소멸에 의해서 해소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해서도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글_엄정식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한양대학교 석좌교수글쓴이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웨인주립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철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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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 06 + 05 과학과 기술
출처 : 마음의 정원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메모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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